안녕하세요, 스타일지기입니다.
브런치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용욱 작가는 사진을 사랑하는 엔지니어입니다.
취미로 시작한 사진이 점점 더 큰 열정이 되어, 이제는 글과 사진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용욱 작가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래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이용욱 작가님 브런치 바로가기▼
브런치
나는 전문 사진작가는 아니지만, 틈나는 대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 내가 찍은 사진이나, 사진과 관련한 이야기를 SNS에 올리는 아마추어 사진작가쯤 된다. 비록 프로 작가는 아니지만 상관없다. 나는 그저 사진이 좋다. 그런데 어쩌다 사진을 좋아하게 됐을까? 그리고 왜 아직도 사진을 찍고 있을까?
내 관심의 시작은 사진이 아니라 카메라였다.
나만의 첫 카메라는 일명 ‘장롱카메라’였다. 부모님이 사셨던 것이지만 장롱에 내 박혀 있다가, 내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내 차지가 되었다. 그 카메라는 배터리가 있어야만 셔터가 동작했는데 지리산 천왕봉 일출을 보러 갔다가 영하 20도의 기온에 배터리가 얼어붙어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하고 온 후 완전 기계식 카메라로 교체했고, 이후 DSLR을 거쳐 23년 초 소니의 Alpha 7R IV(이하 A7R4)로 정착하게 되었다. 소니의 미러리스 카메라로 정착하게 된 것은 첫째는 렌즈 선택의 다양성이요 둘째는 AF 성능이 뛰어났기 때문인데, 그 중에서도 고화소를 갖춘 A7R4는 사진을 중심으로 찍는 나에게는 가장 적합한 카메라였다.
그렇게 ‘장롱카메라’를 손에 넣으며 나의 사진인생도 시작되었다. 투명하게 영롱한 빛을 발하는 렌즈, 묵직하고 견고한 느낌의 바디. 한순간에 카메라와 사랑에 빠져들었다. 사진을 찍지 않을 때에도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들여다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카메라를 만지는 것이 즐겁다.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자면 설레고 행복하며, 결과물을 볼 때면 뿌듯함과 아쉬움으로 다음 촬영 여행을 헤아려보곤 한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내가 좋아했던 것은 사진보다는 카메라와 여행이었던 것 같다. 카메라를 들고 나가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사진은 여행에서 따라오는 부산물이었다. 자랑 같지만, 그럼에도 내가 찍은 사진은 예뻤고 덕분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진 잘 찍는 녀석’ 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공모전에도 입상하며 지인들에게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면 자연스럽게 불려 다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내가 찍는 사진은 언제나 비슷비슷하게 그저 예쁘기만 하다.
내 사진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때부터 사진책을 읽고 전시회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책과 전시를 보며 독학하는 것만으로는 내 사진이 별반 달라지지 않아, 사진 아카데미에 등록도 했다. 지도작가님의 가르침과 동료 수강생들과의 크리틱으로 사진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지만 눈 앞에 뿌연 막이 덮인 듯 답답함은 계속됐다. 여전히 어디선가 본 사진들을 따라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만의 사진’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어느 날 ‘사진은 사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작은 충격을 받았다. 기계장치인 렌즈와 카메라로 대상을 찍는 사진이 사실의 재현이 아니라니?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특정한 사물을 대상으로 직접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실험의 대상을 고르는 조건은 아래의 두 가지로 정했다.
첫째, 사람들의 행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어야 함.
둘째, 특별한 장소에 가지 않아도 손쉽게 촬영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함.
이와 같은 기준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일출 장면이다. 태양은 날마다, 항상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뜬다. 일출보다 더 객관적인 대상이 어디 있을까? 피사체를 정하는 것에 비하여 장소를 정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내 집은 사방이 높은 건물로 막혀 있어 일년 중 여름 한 달 정도만 일출을 볼 수 있기에 다른 장소를 찾아야 했다. 집에서 가깝고 사방이 탁 트인 곳, 응봉산 정상의 팔각정 앞 나무 옆으로 촬영 위치를 고정했다.
다음은 렌즈의 화각과 구도를 정해야 했다. 70-200mm 줌렌즈에서 최대 망원인 200mm 화각으로 고정하고, 서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랜드마크인 롯데월드타워를 화면 정중앙으로 잡았다. 노출값도 중요한 문제였는데, 날씨에 따라 노출값이 극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일출장면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려면 촬영조건을 동일하게 유지해야 했다. 맑은 날과 흐린날 모두에서 촬영이 가능한 조건을 찾아야 했다. 시험 촬영으로 조리개, 셔터속도, 감도 값들을 결정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촬영할 수 있는 하나의 노출값은 없었다. 처음에 정한 노출값을 기준으로 날씨에 따라 조절하기로 했다.
자, 이제 촬영 준비를 마쳤다.
그 다음으로는 해가 뜨는 과정 중 어느 시점에 촬영할지를 고민했다. 태양이 산 능선 위로 드러나는 첫 순간, 태양이 능선 위로 완전히 둥근 모습을 나타냈을 때, 아니면 하늘 위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을 때,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다.
하지만 답을 얻었다고 해서 곧바로 실험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이제 나는 이 실험을 통해서 어떤 결과물이 나올 것인지를 알고 싶어졌다. 연중 해가 가장 늦게 뜨고(후에 이는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음) 낮이 가장 짧은 동지를 중심으로 전후 약 한 달 동안 일출을 찍었다. 아래의 사진이 그 결과이다.
실험을 준비하며 사진의 주관성을 깨달았다면,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대상의 객관성을 인식하였다. 책으로 알게 된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꽤나 달랐는데, 해는 생각보다 빨리 움직이고 해가 뜨는 위치와 시각은 날마다 달라졌다. 무엇보다 변화가 하루하루 뚜렷하게 보인다는 것.
일출 시각은 동지를 지나서도 계속 늦어지다가 보름이 지나서야 다시 일러지기 시작했다. 지구의 공전궤도가 타원형이고,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균시차 현상’ 때문이라 한다. 단순히 매일 해가 뜨는 것을 촬영하려던 실험에서 뜻밖에 우주적인 규모의 움직임을 보게 되다니… 촬영한 결과물은 주관의 산물이지만 촬영하는 대상은 여전히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들 사진을 ‘객관적인 사실, 혹은 진실을 재현하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사진을 찍을수록 과연 객관적인 사실이란 존재하는가를 의심하게 된다. 사진속에 ‘객관적인 사실’은 존재하겠지만 찍는 사람의 ‘주관적인 선택’의 결과이다. 사진의 주관성을 발견할수록 사진이 재미있어진다.
사진은 결국 ‘기록’보다 ‘표현’이다.
그렇다면 나의 사진은 어떠해야 할까? 대상의 객관성을 배제하고, 주관성만을 내세우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또는 주관성을 억제하고 객관성을 극대화하는 것은?
내가 추구하는 사진의 방향성은 객관성을 배제하지 않고, 나의 주관을 입혀 표현해 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때, 대상의 객관성에 대한 이해 역시 중요한 부분이므로 편견을 버리고 더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자세한 관찰은 대상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더 나아가 그 대상을 사랑해야 가능할 것이다. 아하, 앞으로 나만의 사진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단초를 얻은 것 같다.
그런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왜 사진을 좋아하는 것일까?
사진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는 내 인식의 해상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취미 사진작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상관 없다.
사진을 통해서 세상을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이것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도 하나의 힌트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