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스타일지기입니다.
박찬용 에디터, 저자.
<크로노스> <에스콰이어> <아레나> 등에서 에디터로 일했습니다.
시계를 비롯한 각종 고가 소비재와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취재했던 것을 바탕으로 『요즘 브랜드』, 『모던 키친』 등 현대 도시의 라이프스타일과 소비 문화를 다루는 책을 냈습니다. 조선일보에 <박찬용의 물건만담>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현재 일곱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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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모르면 사진가한테 무시당하는 거에요.
잡지 에디터로 처음 일하던 때 함께 하던 사진가에게 들었던 말이 지금까지 기억난다. 나는 그 이후로 계속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다양한 지면을 만드는 에디터 일. 때문에 사진은 내게도 직업적 숙지 요소가 되었다.
내게 했던 사진가의 말도 시간이 지나고 볼 수록 맞았다. 이른바 지면을 만드는 에디터라면 보통 현장에 사진가와 함께 가는 경우가 많다. 사진가에게 무엇을 왜 원하는지 잘 전해야 사진가가 적합한 결과물을 낼 수 있다. 그를 위해서는 에디터도 사진가와 사진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 잡지 에디터로 일할 때 '테크'라 부르는 가전제품을 다루기도 했다. 카메라 역시 잡지에서 자주 다루는 품목이다. 그렇게 카메라가 내 업무의 일부로 들어왔다. 꼭 일이 아니어도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무시당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재미있어서’ 카메라를 찾아보고 사진가들에게 카메라를 물었다.
내가 직장인 잡지 에디터로 일하던 시기는 마침 카메라의 흐름이 변하던 때이기도 했다. 내가 처음 일을 하던 2000년대 말에는 프로 사진가들이 풀프레임 DSLR을 주로 썼다. 그러던 시대가 소니 쪽으로 기울어 가기 시작하는 게 눈에 보였다.
내가 본 한국의 프로 사진가 업계는 일종의 도제식이다. 젊은 사진가들은 '실장님'이라 부르는 대표 사진가와 함께 몇 년 일하다 자기 스튜디오를 차려 독립한다. 2010년대 후반에 독립한 사진가들이 소니 풀프레임 미러리스를 주력 카메라로 쓰기 시작했다. 스튜디오를 새로 차린 사진가들의 소니 카메라들을 보며 시대가 바뀌었음을 실감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분야는 아니지만 보도 사진계에서도 소니 카메라가 많이 쓰인다고 들었다. 2024년 가장 인상적인 보도사진이었던 트럼프 피격 사진도 소니 카메라로 촬영된 사진이다.
나도 소니를 쓴다. 직업 사진가는 아니지만 일상이나 취재 현장 기록을 위해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 다른 훌륭한 카메라를 써본 적도 있으나 일상에 남은 건 소니다. DSLR은 일반인이 일상적으로 가지고 다니기엔 크고 무겁다. 크기 때문에 취재나 출장 현장에서 보통 사람을 촬영할 때는 찍히는 사람들이 '저 사람이 카메라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굉장히 의식한다.
레트로 디자인의 크롭 바디 미러리스를 써본 적도 있다. 다 좋았는데 안타깝게도 내 주변에 레트로 물건이 너무 많았다. 그 카메라를 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레트로 감성에 젖은 ‘아저씨’같은 느낌이 들어 카메라라도 현대적인 생김새면 어떨까 싶었다. 작고, 흔히 말하는 모던한 디자인의 고성능 카메라를 찾다 보니 소니에 닿았다.
아울러 나는 소니의 아우라를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일 지도 모른다. 물론 소니는 지금도 유명한 회사지만 내가 어릴 때의 소니는 지금 느낌과 조금 달랐다. 소니의 모든 것이 다른 제품보다 한 층 위에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용산 전자상가에서 신제품 워크맨과 CD 플레이어를 구경하던 세대다. 왠지 미심쩍은 판매점의 형님들 사이에서도 소니 물건은 확연했다.
현대적인 색감. 진취적인 디자인. 탄탄한 만듦새. 우리 세대의 프리미엄이었던 '일제 가전'의 이미지 그 자체였다. 소니의 초기 디지털 카메라도 남달랐다. 이름부터 사이버샷(지금 들으면 아닐 테지만 상당히 미래지향적인 이름이었다)에, F717이나 F77같은 제품은 그 당시의 어떤 디지털 카메라와도 달랐다. 소니는 늘 '다음엔 어떤 게 나올까?'라는 기대와 궁금증을 주는 회사였다.
필요와 기호의 결과 나는 소니 RX 라인업을 쓰게 되었다. 지금은 DSC-RX100 (이하 RX100) 과 DSC-RX1 (이하 RX1)을 쓴다. RX100은 줌이 필요할 때 쓰고 RX1은 아무 때나 쓴다. 내 일상이나 업무 현장에서 줌을 쓸 일은 많지 않아서 조금 더 무겁지만 RX1을 더 많이 가지고 다닌다.
나온 지는 조금 되었지만 좋은 카메라는 좋은 음반 같은 것. 시간이 지나도 언제든 계속 함께 할 수 있다. 배터리나 충전기 등 소모품도 계속 출시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사용에 무리가 없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지금 작업하는 책이 몇 권 있는데, 사진이 들어간다면 이 카메라로 촬영한 게 많을 것이다.
나는 작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일단은 혼자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뭐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언론매체나 기업 등과 일하는 틈틈이 내 책을 준비하는 중이다. 1월에는 단행본 취재를 위해 파리에 다녀왔다. 이때 신형(내 기준에서는 최신형) 소니 카메라를 쓸 기회가 생겼다. 원고를 의뢰한 소니에서 Alpha 7CR (이하 A7CR)을 빌려줄 수 있다고 하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렌즈는 일부러 평소에 전혀 쓸 일이 없을 70mm-200mm의 줌렌즈인 SEL70200G2.
도시의 줌 렌즈는 아주 즐거웠다. 파리처럼 오래된 대도시는 도시 곳곳에 멋진 디테일이 많다. 그런 걸 찾아서 찍는 재미가 있었다. 업무나 잔고 등 상황에 따라 개인적으로 구매할 의향이 생길 정도로 빠져들었다. 레트로 아저씨에서 조금 더 벗어날 수도 있고.
A7CR을 써본 뒤 사고 싶은 소니 카메라가 2개로 늘었다. 하나는 역시 A7CR. 나는 옛날 기계를 좋아하는 만큼 실사용에서 그 한계와 곤란한 부분들도 많이 느꼈다. 최신형 기기만이 줄 수 있는 감각과 감동이 있다. A7CR에도 물론 그게 있다. 포커싱은 빠르고 결과물은 정확하다. 만듦새 역시 내가 기억하고 동경하던 소니풍의 견고함이 느껴진다.
사고 싶었던 다른 소니는 QX1이다. 2010년대의 컬트 카메라인 렌즈 스타일 카메라의 플래그십 모델이다. 일반 카메라 렌즈 크기인데 APS-C센서와 E마운트를 탑재해 렌즈 교환이 가능하다. 스마트폰 성능과 배터리 용량이 대폭 향상된 지금 더 잘 어울릴 것 같아 역시 매물을 찾아보는 중이다.
가장 최근의 출장은 인도로 다녀왔다. 물론 소니 카메라와 함께였다. 대여한 A7CR을 잘 반납하고 내가 쓰던 RX1을 챙겼다.
처음 가보는 인도의 산 속 농장에서 RX1은 역시 잘 작동했다. 기록을 위해 이런저런 사진을 찍으며 '그래 이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소니 카메라들과 함께 여러 일들을 계속 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