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축약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영화 스틸컷을 위해 촬영 현장에는 항상 ‘스틸 포토그래퍼’가 함께 합니다. 혹한의 추위나 거친 야외 환경도 마다하지 않고 현장에 상주하며 영화 전체의 스토리를 사진으로 담아내는 스틸 포토그래퍼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기생충’, ‘아가씨’, ‘암살’, ‘1987’, ‘이퀄스(Equals)’ 등 다양한 국내외 영화 스틸 및 포스터를 촬영한 이재혁 작가를 만나봤습니다. 사진과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이 돋보였던 이재혁 작가와의 인터뷰를 전해드립니다.
</설국열차>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영화 스틸과 포스터 사진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포토그래퍼 이재혁입니다. ‘기생충’, ‘아가씨’. ‘암살’, ‘1987’, ‘설국열차’를 비롯해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블랙 팬서’의 국내 촬영과 ‘이퀄스(Equals)’, ‘Endings, Beginnings’ 등의 스틸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최근에는 공유씨와 박보검씨가 주연을 맡은 영화 ‘서복’의 작업을 마쳤습니다.
</기생충>
</기생충>
</아가씨>
</암살>
</암살>
</1987>
</이퀄스(equals)>
Q. 사진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부모님의 제안으로 사진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워낙 기계를 좋아하다 보니 당시 영화 연출을 하고 계셨던 친형님이 사진을 배우면 같이 일을 할 수 있다며 권유하셨어요. 형님은 1997년에 개봉한 영화 ‘아름다운 시절’로 데뷔하셨는데요. 저 역시 이 작품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게 되면서 스틸 포토그래퍼로서 첫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아름다운>
Q. 스틸 포토그래퍼로 입문했던 첫 영화 촬영 현장을 기억하시나요?
영화 ‘아름다운 시절’로 처음 스틸 작업을 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라 장소 헌팅부터 매우 공들인 작품입니다. 당시만 해도 시골에서는 포장 도로를 잘 찾아볼 수 없어서 작은 버스를 타고 울퉁불퉁한 산 길을 이동해야 했고,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야외에서 밤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야외에서 보내는 밤이 얼마나 추운지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기록하는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특히 TV에서만 보던 연예인들과 같이 일하니까 더욱 재밌었어요. 일반 직장인이었다면 한 공간에서 매일 같은 사람들만 대면했을 텐데, 영화 현장에서는 매번 새로운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작업하는 게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Q. 스틸 포토그래퍼가 되기 위해서 갖춰야 할 요건이 있나요?
특별한 자격증이나 필수적인 경험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영상물이 제작되는 과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스틸 포토그래퍼라는 직업은 ‘현장에서의 센스’가 중요한 직업이니까요. 드라마나 독립영화 촬영 현장에서 일해보는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로닝(짐벌), 이동차, 조명, 동시녹음 붐 등 다양한 촬영장비로 협소한 촬영 공간에서 장면을 빠르게 캐치하는 프로세스를 몸소 체험해보는 게 중요합니다.
Q. 스틸컷과 포스터 촬영을 주로 하시는데,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설국열차>
</설국열차>
</설국열차>
영화 스틸컷은 짜여진 촬영 스케줄에 따라 영화 장면과 현장 모습을 기록해 두는 용도로 찍게 됩니다. 반면 포스터는 영화 촬영 외에 별도 일정을 잡아 스튜디오에서 찍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스틸로 찍은 컷 중에 선별해서 포스터로 사용하기도 하는데요. ‘타짜’나 ‘악마를 보았다’의 경우 제가 현장에서 찍은 스틸컷이 포스터로 사용됐습니다. 만약 영화 촬영 현장이 아닌 스튜디오로 옮겨 포스터를 촬영하게 될 경우 현장감을 잃는 사진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세심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국가부도의>
</타짜>
Q. 스틸컷이 포스터로 사용되는 모습을 보면 점차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촬영된 영화 스틸컷은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나요?
과거의 영화 스틸컷은 10장 분량의 앨범으로 만들어 지방 극장에 영화 상영을 제안하던 용도로 사용됐습니다. 영화 개봉 전 영화를 소개하는 ‘티저(teaser)’와 같은 개념이었죠.
지금은 앞서 말했듯 영화 장면이나 제작 현장의 모습들을 기록하기 위한 용도로 찍는데요. 결과물은 영화 홈페이지, 온·오프라인 광고, 전단지 등의 홍보물과 굿즈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됩니다.
</기생충>
특히 최근에는 다양한 SNS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스틸컷의 사용 범위가 더욱 넓어지고 있습니다. SNS 플랫폼 특성에 따라 이미지를 크롭해서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잦은데요. 고화소, 고성능의 카메라로 크롭 후에도 고화질을 유지할 수 있게 되면서, 작업 자유도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Q. 해외 로케이션 촬영도 자주 하시는데요. 해외 촬영을 하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좋은 기억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 실제 LA 가정집에서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현지인들의 삶에 오롯이 스며들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죠. 여행과는 차이가 있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물며 동네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지낸 것 같아요.
</설국열차>
</설국열차>
‘설국열차’ 촬영 당시에는 체코 프라하에서 4개월 동안 봄, 여름을 보냈습니다. 아무리 평범한 일상도 그곳이 체코였기에, 특별하고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곳을 배경으로 찍어도 아름다웠던 경관이 인상 깊게 기억나네요.
‘이퀄스(Equals)’를 촬영할 때에는 일본 곳곳에 위치한 세계적인 간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물을 훑으며 촬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경험하기 어려운 일인데, 촬영을 통해 이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퀄스(equals)>
Q. 다국적 스태프와 일하는 경험은 어떠셨나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계약조건도 다르고, 영화 현장도 백여 명의 스태프가 참여하니 몇 명만 달라져도 작업 전개 양상이 바뀌었습니다. 힘들지만 재미난 작업이었습니다. <설국열차> 촬영 후에 존 허트(John Hurt) 배우가 인터뷰 마지막에 저를 리얼 아티스트라며 칭찬해 준 적이 있는데 이 일을 하는 보람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퀄스(equals)>
Q. 올해 영화계를 휩쓴 ‘기생충’ 스틸 작업에도 참여하셨는데요. 이 영화에 Alpha 9과 함께 작업을 진행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Alpha 9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좋은 스틸컷이란 멋진 배우가 나오는 멋진 사진이 아니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분위기를 충분히 전달하는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결과물을 갖기 위해서는 저 스스로 배우의 연기와 표정에 몰입하되, 배우의 연기를 방해할 만한 어떠한 소음도 내서는 안되죠.
</기생충>
</기생충>
이런 의미에서 A9은 촬영장이라는 전쟁터에 나갈 때 마치 오발 없는 총을 들고 나가는 듯한 든든함을 주는 카메라입니다. A9은 영화 ‘1987’ 때부터 사용해오고 있는데요. 빠르고 정확하게 실시간 피사체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 DSLR처럼 측거점을 이동하는 번거로움 없이 배우의 연기와 표정에 몰입해 촬영에 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저에게 A9의 Eye-AF 기능은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이전에는 하우징을 하면 포커스 한 지점을 정해놓고 촬영해야 했다면 이제는 반셔터나 AF-0N 버튼만 눌러 놓으면 카메라가 자동으로 배우의 눈을 쫓아가 초점을 맞춰주는 거죠.
</1987>
또한, 과거에는 배우 감정선에 방해가 안되도록 타사 카메라 사운드 블림프를 이용해 큰 통 안에 카메라를 넣어 셔터 소리를 줄였습니다. 카메라에 사운드 블림프까지 장착하다 보니 무게감이 상당했죠. 반면 A9은 무소음, 무진동이어서 조용한 촬영 환경에서도 별다른 방음 장비 없이 A9만 가지고 촬영할 수 있다 보니 기동성이 좋아서 다양한 구도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블랙아웃 없이 촬영이 가능한 것도 A9이 가진 매력 포인트 중 하나죠.
Q. 기생충 포스터도 작가님이 촬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기생충 포스터 패러디 열풍이 불고 있는데, 어떠신가요?
기생충 포스터는 설국열차 포스터와 함께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작업물 중 하나인데요. 화창한 일상의 정오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하필 포스터 촬영 당시에는 날씨가 좋지 않아 현장에서 조명을 이용해 태양광의 쨍한 느낌을 구현하고자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영화 기생충에 애정있으신 분들이 재미있게 패러디해 주셔서 포토그래퍼로서 너무 영광이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생충>
</기생충>
Q. 카메라 바디 만큼이나 중요한 게 렌즈죠. 렌즈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으실까요?
셔터 스피드를 확보한 상태(모션 블러)에서 배우의 연기를 따라가며 촬영하기 때문에 밝은 조리개와 정확하고 빠른 포커스를 선호합니다.
상황에 맞춰 표준렌즈와 준망원렌즈를 번갈아 사용하는데요. 가령 배우와 미술, 소품 등 주변 정보를 함께 담아야 할 때는 SEL35F14Z를 쓰고 배우의 표정에서 감정을 충분히 드러내야 할 때는 SEL85F14GM과 SEL135F18GM을 사용합니다. G Master 렌즈는 부드러움이 특장점입니다. 리터칭 했을 때 해상도도 무척 좋죠.
</기생충>
</endings,>
Q. 작업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현장의 흐름을 읽어 순간을 포착하는 감각만큼이나 매 장면을 충실히 담아내고자 하는 성실함이 중요합니다. 저는 영화 시나리오를 본 후 전시회 같은데 가서 여러 작품을 봅니다. 어떻게 사진 촬영을 하면 좋겠다는 영감을 얻죠.
</기생충>
예를 들어 ‘기생충’ 촬영 때는 기택네 반지하 방의 곰팡이 핀 벽지의 우중충한 느낌을 떠올리며 형광등은 어떤 색감으로 맞추고 물이 여러 번 들어오면 벽지가 어떻게 바뀔지 등을 생각해 봤습니다. 인물의 특성이 공간에도 녹아들어가는 만큼 공간에 맞춰 사진의 톤을 정했습니다.
또한, 스틸컷도 상업 사진의 한 분야이기에 상업적인 느낌과 예술성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데도 집중합니다. 이 밖에 팁이라면, 최대한 많은 방향의 소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자신의 무기가 되겠죠. 촬영 후에도 편집에 따라 영화의 분위기가 바뀌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스틸컷이나 포스터 역시 여기에 맞춰 바뀌어야 하는 만큼, 촬영 현장에서 다양한 각도로 많은 컷을 찍는게 중요합니다.
</아가씨>
</아가씨>
Q. A컷을 고르는 선정 조건이 있을까요?
A9을 라이브 뷰 모드 M에 놓고 촬영하면 하루에 4천장 정도 촬영이 가능합니다. 그 중 제가 20~30% 정도로 사진을 추립니다. 이후 선별된 사진마다 숫자를 적고 스튜디오 사진, 현장 사진, 감독님 사진, 배우 사진 등으로 분류합니다. 동시에 데이터가 손상되지 않게 TIF(티프)로 변환합니다. 하루에 최대 50컷을 보정하죠.
</설국열차>
배우, 마케팅, 투자자 모두가 사용하고 싶은 사진이 있고, 쓰기 싫은 사진도 있겠죠? 마케팅, 투자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공통분모도 고려해야 합니다. 여러 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에, 배우 단독 컷 외 투샷, 쓰리샷도 계속 촬영해 준비해 놓습니다. 소스가 풍부해야 마케팅을 할 때도 활용할 거리가 많아집니다.
Q. 주로 다루는 상업 사진 외에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사진 분야가 있나요?
사실 영화 촬영이 없는 동안에는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평상시에도 에너지를 소비하면, 정작 힘을 줘야 할 때 전력을 다하지 못하거든요. 일할 때는 완벽하게 일하고, 쉴 때는 전시회에 가거나 영화도 많이 보러 다닙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진 장르를 꼽자면 다큐멘터리 분야의 작품들입니다.
Q. 작가님의 작업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관객에게 자유로움을 주는 작업’이랄까요? 사람들은 결국 인위적인 느낌이 아닌, 스냅 같은 자유로운 느낌의 사진을 좋아합니다. 무언가 틀에 갇힌 사진이 아닌, 배우의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듯한 사진 말이죠. 많은 관객 분들이 제 스틸컷과 포스터를 보시면서, 영화 관람 전 자유롭게 여러 느낌을 받고 상상해 보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고지전>
</설국열차>
지금까지 스틸 포토그래퍼 이재혁 작가의 인터뷰를 함께 보셨습니다. 사진이라는 정지된 이미지를 통해 관객에게 영화의 스토리와 분위기를 전하고자 하는 이재혁 작가의 진심이 느낄 수 있던 인터뷰였습니다. 앞으로 영화 개봉 전, 스틸컷과 포스터를 감상하면서 작가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고민해보신다면 더욱 영화를 재미있게 관람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