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취미로 하는 마케터이자 프리랜서 작가.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영감의 순간들을 카메라로 기록하고 매일 글로 남기고 있다. 네이버의 여행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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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대학교 1학년 때 OT에서 만난 1년 선배가 사진 학회 소속 선배였습니다. 2000년대 초반 디지털 카메라가 막 나오던 시기였기에 카메라는 필름 카메라만 알았던 저에게 디지털 카메라는 신세계와 같은 취미였죠. 사진을 찍으면 파일로 저장이 되어 LCD로 사람들에게 바로 보여줄 수도 있었기에 기다리지 않아도 됐으니까요.
너무 좋아했던 취미라 별 일이 없으면 카메라를 항상 소지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장면들을 찍기도 했고, 누군가와의 추억을 담아야 할 일이 있으면 항상 가방에서 카메라를 챙겨 다니곤 했죠. 장면을 연출해서 찍는 사진도 있었지만,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을 담는 스냅 사진들을 더 좋아했습니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서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저의 프레임에 들어온 멋진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담았답니다.
덕분에 '너 카메라 갖고 다니네?' 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습니다. 한 순간도 놓치기 싫어 어디를 가나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으니까요. 이렇게 카메라와 함께 동행하며 찍은 사진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너 사진 잘 찍는다' 같은 긍정적인 피드백이 모여 인생의 여러가지 기회들을 만들어주면서 계속해서 카메라는 제 신체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사진, 음악, 영화 감상 모든 것이 스마트폰으로 가능한 시대에 크고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이 조금은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너 카메라 갖고 다니네?' 라는 질문은 지금도 듣고 있지만, 그 때와 지금의 뉘앙스는 조금 달라졌죠. 시대가 변했음에도 '응. 나 카메라 갖고 다녀.' 라고 말하는 저의 이야기들을 지금부터 나눠보고자 합니다.
#취향과 개인 브랜딩과 카메라
우리는 취향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그 사람의 물건을 통해 유추를 합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추측은 LP 음반과 턴 테이블을 통해 알 수 있고,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인 것은 내 손목에 스마트 워치가 아닌 무브먼트로 움직이는 시계를 통해 알 수 있죠.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라는 추측은 카메라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기존의 취향이라고 여겨졌던 음악, 시계, 사진 모두 스마트 디바이스에 통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취향을 소유한 사람은 여전히 장비를 보유합니다.
한 단계 더 들어가면 어떤 바디와 렌즈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세분화됩니다. 풀프레임 미러리스, APS-C 미러리스, 컴팩트 카메라를 쓰느냐, F2.8의 고정 조리개 줌렌즈를 갖고 다니느냐, F1.8의 단렌즈를 여러 개 갖고 다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추구하는 스타일이 보이기도 하지요.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도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이미지가 형성된다는 것은 브랜딩이 된다는 것인데요.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_____ 사람이다’ 라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카메라를 갖고 다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A컷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사진에서 담고자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찍고자 하는 순간을 정확히 담았는가’ 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행을 하는 중에 너무나 멋진 풍경을 봐서 이것을 찍는다거나, 내 앞에서 요리를 해주는 셰프의 모습이 제대로 담겼는가 같은 것이지요. 한 마디로 이야기를 하면 '다시 만나기 힘든 순간의 포착'을 한 사진이 저에게는 A컷이 됩니다.
최고의 카메라 역시 순간 포착을 잘 할 수 있는 카메라입니다. 기계적인 성능을 보면 초점을 내가 원하는 곳에 빠르게 잡을 수 있는가? 피사체의 심도 표현을 명확하게 해줄 수 있는가? 노출이 부족한 상황에서 충분한 셔터스피드를 계산하여 확보해주는가? 셔터스피드가 부족하면 손떨림 방지 기능이 작동하는가? 이러한 기준점들이 저에게는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이 모든 변수들을 짧은 시간안에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로 컨트롤 하여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계는 카메라만한 것이 없더라고요.
설렘을 갖고 떠났던 20대의 첫 배낭여행,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데이트, 나와 닮은 것이 신기하기만한 딸의 미소, 같이 늙어가는 반려자의 가장 젊은 오늘을 B컷으로 타협하고 싶지 않습니다.
#순간을 더 아름답게
사진을 찍다 보면 사진에 감정을 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주로 인물 사진을 찍을 때 이런 마음이 드는데, 이럴 때 빛과 심도를 조절하게 됩니다.
사진에서 빛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죠. 특히 역광 사진은 드라마틱한 감성을 보여주기에 빛이 보이면 컷을 담으려고 합니다. 머릿결과 옷감에 생기는 빛의 선이 잘 담긴 사진을 봤을 때의 희열은 비교할 수 없는 만족감을 줍니다.
심도 표현은 대개 아웃 포커싱을 생각하여 피사체의 뒷배경을 날리게 되는데, 저는 피사체의 앞을 날리는 인포커싱 사진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인물이 프레임에 배치를 할 때 앞에 넣을 수 있는 보조 피사체가 있는지를 보고 셔터를 누르죠.
#순간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디지털 후보정을 하느냐 안하느냐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저는 완성도 높은 퀄리티를 위해서 모든 사진을 후보정합니다. 집에 와서 사진을 PC에 옮기고 라이트 룸을 켠 후, 파일 하나하나를 열어서 수평을 맞추고 색감을 넣습니다. 이 과정에서 셔터를 눌렀을 때의 순간들이 리마인드 되면서 그 때의 시간과 공간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은 대형 인화를 하여 나의 공간에 세워둡니다. 사진을 인화한다는 것이 디지털 시대로 오면서 이벤트처럼 되었지만, 원래는 일상적인 행위였지요. 6.2인치의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27인치 모니터로 보는 것보다 그 때의 기억들이 더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좋았던 기억은 오랫동안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지 않을까요. 후보정을 하면서 찍었던 사진을 다시 꺼내며 그 때를 추억하고, 대형 인화를 해서 일상에서 접하는 것처럼 말이죠.
#마치며. 순간의 소중함에 투자하는 사람
카메라를 사용함으로 인해서 순간을 놓치지 않으며 아름답게 기록하고, 오랫동안 추억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생각들을 종합해보면 카메라를 쓰는 사람은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지죠.
일반적인 스마트폰으로도 대부분의 일상을 담는 데는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나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90%의 만족도를 98%, 100%의 퀄리티로 올리는 것은 의지의 영역이지요. 어느 분야든지 의지를 갖고 에너지를 투입하는 곳에서 나 다움이 만들어집니다.
사람마다 카메라로 찍는 피사체는 다르지만, 셔터를 누르는 마음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름답게 기록하여 오랫동안 추억하고 싶다면, 카메라와 함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