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광고사진 포토그래퍼이자 콘텐츠 기획자. 모든 순간을 글과 사진으로기록하며 살아가고 있다. 글쓰는 사진작가 혜류로 활동하며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사진 찍어내듯 담백하게 써 내려간 에세이 ‘관전수필’을 출간했다.
▼ 신유안 작가 SNS 바로 가기(링크) ▼
1. 사진을 짓다
‘사진을 찍다’라는 것의 의미는 모두가 다릅니다. 그 중대함이 태산 같을 수도 있고, 단지 매일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일 수도 있죠. 이렇게 찍는 행위는 주관적 경험 및 필요에 따라 다양한 동기가 있을 수 있는데요. 하지만 찍는 행위는 포괄적으로 ‘짓는’ 행위와 맞닿아 있습니다.
‘짓다’라는 말은 편하고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정성을 다해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밥을 만들지 않고 지으며, 농사를 만들지 않고 짓는다, 시를 쓰지 않고 지으며, 노래를 만들지 않고 짓는다 라고 말하죠. 그리고 사진도 ‘짓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사진 찍는 행위는 물리적, 정신적으로 ‘짓는’ 과정을 거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순간적으로 셔터를 누른다 하더라도, 그 찰나의 순간, 나의 경험적 및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화면을 구성하게 되죠. 거기에 저는 상업사진을 찍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며 사진을 단어 그대로 지어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의 의견과 생각, 수많은 리터칭을 통해 한 장 한 장의 사진이 귀하게 만들어지는데요. 이러한 과정은 수많은 시간과 생각의 누적, 상상력을 통해 완성되곤 합니다.
2. 느림의 미학
하지만 상업사진만 이런 ‘짓는’ 행위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진은 이 정성스러운 과정을 알게 모르게 수반하죠. 저는 종종 외부로 나가 사진 찍는 행위를 즐깁니다. 시간이 많지 않지만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제 시간이 되죠.
이럴 땐 항상 뷰파인더로 사진을 찍는 편입니다. 사실 LCD 화면을 보면서 촬영하는 것이 편할 수 있지만 뷰파인더에 눈을 착지시키고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또 다른 세상이 찾아오는데요. 뷰파인더로 본 세상은 고요하고, 정지되어 있습니다. 한쪽 눈을 감고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죠. 비로소 내가 보고자 하는 세상이 나오면 정확하고 천천히 셔터를 눌러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느리고 빠른 시간이 지나게 되면 세상은 박제되어 저에게 오는 것이죠. 그렇게 기록한 세상은 오롯이 나만의 세상이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명상의 그것과 닮아 있습니다. 세상은 너무 빨리 돌아가고, 모든 것의 유통기한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딘가에 ‘사랑의 유통기한을 만년으로 하고 싶다’던 <중경삼림> 금성무의 감성도 있지 않을까요? 크고 작은 내게 닥친 일로 마음이 복잡할 때 잠시 머물며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 개인적으로 사진만큼 좋은 것은 없는 듯 합니다.
가장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에 가장 정지된 것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은 꽤나 매력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3. 자아의 발견
과거 모 기관에서 주관하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진 교육을 진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을 제한된 시간 내에 알려주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사진의 또 다른 재미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사진 콜라주로 셀프 포트레이트를 만드는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방식이나 소재는 광범위하게 진행했고,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을 동원해 만들 수 있도록 했죠.
그 결과 본인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수업시간에 나왔습니다. 눈물을 흘리시는 분도 계셨고,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수업 시간에 내뱉고 가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의 작품이 되어갔죠.
개인적으로 ‘셀프 포트레이트(Self-portrait)’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굳이 나를 찍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그리다’ 라는 말은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정의하다 라는 말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인데요. 저는 사진이라는 것이야 말로 셀프 포트레이트를 정밀히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라 생각합니다.
셀프 포트레이트
우리는 나이가 들며 신체의 노화를 경험합니다. 그것은 말라가고 시들어가는 사물의 자연성에 기인하죠. 저는 그것의 어쩔 수 없음에 시무룩해하지만, 아직도 제 젊음의 색과 빛은 저의 가장 근원적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조금 바래 보일 수 있지만 저의 정체성을 말해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평소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인데요. 바쁜 삶을 살다 보니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없죠. 내적인 것을 돌아보기엔 외적인 변화에 집중해야 그나마 따라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카메라를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모습을 정의하고 상징하는 것들을 찍어내고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스스로를 통찰하고 발전시킬 수 있게 되죠.
사진을 잘 찍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스스로를 알아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사진은 그 역할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읽어내는 일. 우리가 사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