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사진관은 여행과 사진을 좋아하는 포토그래퍼로, 현재 제주도에서 스냅 사진관 ‘호시절’을 운영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촬영한 사진을 기반으로 한 에세이 ’수고했어, 오늘도’, ‘좋은 건 같이 봐요’, ‘제주는 잘 있습니다’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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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정으로 셔터를 눌러야 할 순간
한국인이 사랑하는 섬, 제주도. 그리하여 언제나 그리워하게 되는 섬 제주에 살고 있습니다. 정말 어쩌다 보니 여행이 아닌 생활자로서 이 섬에서 떠나지 않고 머물며 제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흘러가는 일상은 여행이 되고, 또 여행은 일상이 되어갑니다. 누군가가 여행을 즐기러 오는 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주에서의 삶은 유독 여행과 일상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가끔 제주 생활을 하며 혹은 사진을 촬영할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찍는지 물어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항상 사진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촬영을 합니다.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은 SNS에 좋아요를 많이 받는 것,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이 순간을 함께하고 보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큽니다.
2. 카메라 한 대만 있다면 즐거운 이곳에서
섬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익숙해서 편안하기까지 했던 도시 생활을 접고 하루아침에 도민이 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아무리 꿈의 섬 제주라도 기존의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에 적응해야 하는데 쉬울 리가 없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던 패스트푸드점과 카페를 어떻게 포기하고, 언제나 어디로든 닿을 수 있었던 편리함을 어떻게 바로 잊을 수 있을까요? 처음 제주에 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제주는 머무는 곳보다 잠깐 들르는 곳이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퇴근 후 친구들과 치킨을 사서 언제든 바다를 배경으로 먹을 수 있고, 걷고 싶을 때는 숲이나 오름을 가까이서 걸을 수 있습니다. 제주 살이는 즐겁다가도 가끔은 머뭇거려질 때가 있었습니다. 월세나 전세 개념이 더욱 익숙했던 육지와는 달리 제주에서는 연세를 내는 삶에 익숙해져야 했고, 분리수거는 꼭 특정 요일을 지켜서 내야만 했습니다. 아프기라도 하면 차를 끌고 최소 30분씩 달려 병원으로 향했고, 제주 살이보다 처음으로 독립해 혼자가 된 1인 가구에 적응하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힘겨운데도 계속해 나갈 이유가 있을까? 그럴 가치가 있을까?’하는 수많은 불안과 의심이 마음 속에 싹트기도 했죠.
하지만 제주에서의 시간이 하나 둘 쌓여가며, 빠름의 편리함 대신 느림의 가치를 배우게 됐습니다. 느림은 고요하고 꼼꼼해서 어느 것 하나 쉽게 지나치지 않고, 해본 적 없는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엔 볼품없을, 거창하지도 않은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이를테면 ‘오늘은 어떻게 재밌게 보내지?’ 같은 것들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름 모를 버스에 카메라 하나만 달랑 들고 올라탑니다. 정해진 목적지는 딱히 없습니다. 그리고 내려서 하염없이 걷습니다. 딱히 언제까지 걷겠다는 것도 없이 말입니다.
3. 사진으로 기록하는 순간의 온기
지금도 특정 주제를 가지고 사진을 찍고 있지는 않지만 제가 직접 보는 것, 좋아하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온기도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의 사진이 여행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여행을, 일상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일상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제주는 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