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레코드의 트렌드 복귀로 턴테이블과 LP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아날로그 사운드의 온기와 디지털의 편의성을 두루 갖춘 소니 턴테이블 PS-HX500도 더불어 큰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마침 레코드페어 한정반이 품귀현상을 빚으며 큰 화제를 모은 뮤지션 ‘9와 숫자들’을 만나 아날로그 레코드 제작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와 LP의 매력 등 음악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죠. :)
9와 숫자들은 대한민국의 인디밴드이다. 멤버들은 숫자로 된 예명을 쓰고 있으며, 현재는 송재경(9), 유정목(0), 유병덕(3), 꿀버섯(4)의 네 명의 멤버들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로 데뷔 9주년이 된 9와 숫자들은 2장의 정규 앨범과 1장의 미니 앨범, 다수의 싱글을 발표했으며, [유예]와 [수렴과 발산]을 한정반 LP로 발매하여 화제가 된 바 있다.
Q. 9와 숫자들의 음악 세계에 영향을 주었던 뮤지션이 있다면?
9 제가 가져온 음반은 개인적으로 듣기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밴드의 바이닐이에요. 슬로우다이브(Slowdive)[각주:1]라는 영국의 밴드이고, 슈게이징(Shoegazing)이라고 ‘신발을 쳐다본다(gazing at their shoes)’라는 의미를 지닌 스타일의 밴드인데요. 이러한 스타일은, 80년대 말 영국에서 갑자기 등장을 했어요. 밴드가 라이브 무대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악기나 바닥만 쳐다보며 연주하는 것을 보고 붙여진 이름이죠. 이 슈게이징을 슬로우다이브가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데, 최근까지도 이 스타일을 이어가는 밴드들이 활동하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모과이(Mogwai)와 같은 팀들로 인해 포스트락이라는 거대한 줄기로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의 시작점에 있던 팀이 바로 슬로우다이브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 팀은 어떻게 말하면 소위 루저, B급 정서, 인디 정서를 대변하는 팀이고, 뭔가 나이브하고 몽환적인 느낌, 꾸며지지 않고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느낌이 있어요. 제가 추구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음악을 즐겨 듣는 한 사람으로서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입니다.
3 고등학교 시절에 진짜 다양한 음악을 들었어요. 구분도 못 하면서 그냥 닥치는 대로 들었죠. 누구나 다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요. 센 음악도 진짜 많이 듣고, 그러면서 ‘나는 음악을 하고 싶은데 대체 어떤 음악을 해야 할까?’ 정체성도 불분명한 상태로 드럼을 치고 있었는데, 고 3때인가? 요 라 탱고(Yo La Tengo)[각주:2]의 음악을 듣고 약간 나의 정체성이 생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90년대 미국 인디 락 밴드인데, 마타도어 레이블의 음악을 좋아했었거든요. 페이브먼트(Pavement)라던지 모과이(Mogwai)같은 밴드 말이죠. 그런 밴드들 중에서 특히 ‘요 라 탱고’의 음악을 정말 좋아했었고, 한 번은 농담으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우리는 그 밴드들에게 소송을 걸어야 한다, 우리의 인생을 망쳐놓은 밴드들이다” 그 정도로 우리들은 그들의 음악에 많이 빠져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저에게 모던락과 인디락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었고, 그쪽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해준 게 요 라 탱고인데, 이 앨범 같은 경우에는 제가 아이슬란드에 갔다가 거기서 사 온 앨범이에요. 그런데, 턴테이블이 없어서 여태 듣지 못 하다가 이번에 소니 턴테이블 PS-HX500으로 처음 듣게 되었어요. 2006년에 사온 앨범이니까 12년만에 들었네요.(웃음)
0영향 면으로 얘기하자면, 둘 다 약간 코어적인 면이 있는데요. 저는 라디오헤드(Radiohead)[각주:3]를 엄청 좋아해요. 다만, 라디오헤드는 앞의 두 밴드와 같은 코어적인 면에서의 영향은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엄청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다양한 방면으로 가지치기를 하는 그 능력이 뛰어난 밴드라는 생각을 하고, 다른 음악을 많이 듣다가 비교적 나중에 들었어요. 한참 유명세를 탔을 때 들었던 게 아니라 다른 밴드 활동을 하던 중에 접했거든요. 그때 들었을 때는 정말 그 시대의 유행하는 트렌드나 이런 것들을 자기 스타일로 표현을 해내는 부분에서 크게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4저는 제프 버클리(Jeff Buckley)[각주:4]의 [Grace]라는 앨범을 선택했습니다. 정말 많이 들었던 앨범이에요. 제가 어렸을 때 약간 중2병 같은 게 있었는데(웃음), 데이비드 보위가 3살 때 자기는 평생 음악을 할 거라는 얘기를 했다고 해요. 그걸 듣고 약간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잡다하게 음악을 혼란하게 많이 들었거든요. 그 중에서도 특히 그 앨범은 제가 듣기에도 굉장히 혼란스러웠던 앨범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소울풀하면서도 아버지(팀 버클리)의 영향을 비롯해서 메탈, 얼터너티브 등 다양한 것들이 혼재해 있어서 음악 자체로서 들었을 때 굉장히 잡다한 감정이 뒤섞인 앨범이에요. 그런 점에서 혼란스러웠던 그 시기를 대표할만한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Q. 처음으로 바이닐(LP)을 접했던 경험이 궁금합니다.
9 제가 6살 때, 아버지가 턴테이블을 쓰시던 게 기억나요. 그때는 음반 시장 자체가 카세트 테이프와 LP가 주류를 이루었던 시대였어요.
0어릴 때, 외삼촌 댁에서 턴테이블을 처음 봤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라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대충 3-4학년이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처음 보는 물건은 전부 신기하잖아요. 그래서 오디오 위에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턴테이블이 있었는데, 무심코 만지다가 바늘을 부러뜨렸어요. 그게 아직도 기억 나네요. 처음 보는 물건인데다가 자꾸 움직이니까 신기해서 살짝 만졌는데, ‘똑’하고 부러지더라고요. 그래서 몰래 나왔어요(웃음).
3 제가 어렸을 때 턴테이블은 보편적인 도구였어요. 집에 바이닐이 잔뜩 있어서 뒤적뒤적하면서 찾아서 듣고, 닦아서 넣어 놓고, 다시 또 듣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요.
4만화영화 둘리에서 처음 봤어요. LP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 만화가 ‘둘리’잖아요. 그 시절에 LP가 흔하다 보니 만화에서도 그렇게 나오곤 했던 것 같은데, 고길동의 LP 컬렉션을… 또치가… 엄청나게 깨요. 와장창 다 깨서…(웃음)
Q. LP부터 스트리밍까지 전 세대의 음악 소비 형태를 경험해보셨을 텐데요, 가장 선호하는 방식은 무엇인가요?
3 솔직히 바이닐을 가장 좋아해요. 라디오헤드의 한정반을 갖고 있을 정도로 평소에도 선호하는데요. 듣다 보면 뒤집어줘야 하고, 많은 곡이 들어가지도 않는 등 불편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스트리밍이 대세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가 대세로 떠올랐다는 것은 불편함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겠죠. 저 역시 그 무언가를 느낀 사람 중 하나이고 말이죠.
9 저는 요즘 테이프를 선호해요. 스트리밍을 테이프에 녹음해서 들을 정도인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음악을 뜨겁게 들었던 때가 중학교 때였거든요? 처음으로 뭘 들어도 신기해했던 시절이에요. 근데 유행이 돌고 돌아서 다시 테이프가 유행이 되니까 너무 반가웠어요. 테이프 하나를 고민 끝에 구입해서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던 그 때가 생각나서 말이죠. 결국 음악이라는 게 음질도 중요하고, 편리함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노래를 듣는다는 행위’ 그 자체인 것 같아요. 지금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식의 폭이 넓은데도 단순히 음질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노래를 듣게 되더라고요.
4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은 시절에 LP랑 테이프로 음악을 듣다가 CD로 넘어왔을 때, “어? 똑 같은 음악인데 왜 안 좋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유를 하자면, LP가 원조 맛집이고 CD는 어설프게 따라 한 느낌이랄까요? 지금이야 직업상 CD나 스트리밍도 모두 들어야만 하는 입장이지만,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LP로 듣고 싶은 마음은 여전해요.
0저 역시 개인적으로 감상하는 용도라면 LP를 선호하는 편인데요. 스트리밍과 LP의 차이는 소리를 생성하고 전달하는 방식에서 온다고 봐요. CD나 스트리밍 같은 경우는 데이터를 소리 신호로 출력하는 방식인 반면, LP는 표면의 굴곡을 바늘이 지나가며 소리를 만드는 것이잖아요. 이를테면, 디지털 음원이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냉동 떡볶이고, LP가 그 자리에서 냄비에 재료를 넣어서 끓이는 즉석 떡볶이라고 할 수 있죠. 어떤 게 더 맛있겠어요? 물론, 취향에 따른 차이는 감안해야 하겠죠(웃음).
Q. LP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9 최초의 음반이 바이닐이잖아요. 처음에는 소재가 다르긴 했지만,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테이프나 CD는 좀더 효율적으로 압축하기 위한 부분이 있잖아요? 음악을 보다 편하게 듣기 위한 수단으로 생겨났다고 볼 수 있죠. 마찬가지로 MP3나 스트리밍 서비스 역시 음악 고유의 맛을 살리기 보다는 편의성 측면으로 등장했는데요. 반면에 LP는 음을 전하기 위한 본질적인 면이 있는 것 같아요. CD나 MP3가 범접할 수 없는 고유의 매력을 지녔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렇게 찾는 사람들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3 그리고 LP는 음악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특별함이 있어요. 디지털의 경우 자동재생이나 셔플 기능이 요즘엔 기본이니까 그냥 계속 틀어두고 BGM처럼 들을 때가 많잖아요. 아니, 듣는다기 보다는 적막을 지우는 하나의 수단으로 쓰기 때문에 방금 무슨 노래가 나왔는지도 모를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LP는 디지털처럼 터치 한 번으로 원하는 곡으로 넘긴다거나 할 수 없기 때문에 한 트랙, 한 트랙 집중해서 듣게 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는 불편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소소한 불편함도 아날로그의 매력이니까요.
Q. 9와 숫자들의 음악을 통해 바이닐을 처음 접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 아날로그 레코드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3 형(9)이 예전에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음악을 들을 때 그 음반을 자켓을 꼭 같이 들고 다니면서 듣는다고. LP야 말로 정말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 안의 가사나 사진들을 음악과 함께 즐기기 좋은 것 같아요.
9 아날로그 레코드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모노에 가깝기 때문에 스피커의 배치가 중요합니다. 인위적으로 스테레오 환경을 만드는 것이죠. 특히, ‘스윗 스팟(Sweet Spot)’이라고 하는 게 있어요. 가장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위치를 말하는데, 인터넷에서 찾아 보시면 스윗 스팟과 관련해서 스피커 배치 방법 등이 나와 있으니 한 번쯤 찾아보셨으면 좋겠어요.
0사실 음향기기를 업그레이드 하는 게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에요(웃음). 제 경우에도 고급 음향기기를 제대로 갖추는 것이 개인적인 희망사항 중 하나이기도 하고 말이죠. 예를 들어 스마트폰에서 스트리밍으로 듣던 곡을 워크맨과 고급이어폰으로 들으면 확실하게 체감이 될 텐데요. 대개 이런 식으로 오디오 덕후가 되곤 하죠.
4디지털화 된 CD나 스트리밍으로 들었을 때 기대했던 것보다 좋게 느껴지지 않는 곡이 있다면, LP로 다시 들어보는 것을 추천해요. 조금이라도 예민한 분들은 그 곡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뀔 것 같아요. 디지털 음원과는 확실하게 다른 무언가가 있거든요.
Q. 새로운 바이닐 발매 계획이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9 바이닐은 저희가 정규앨범 3장, 준정규앨범 1장이 있는데, 지금까지 [유예]와 [수렴과 발산]이 발표되었고, 나머지 2장도 순차적으로 바이닐 발매 계획이 있어요. 그리고,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매월 9일마다 자체 공연이 진행됩니다. 12월까지 계속 되니까 꼭 보러 오세요.
3 9와 숫자들은 차분한 곡만 한다고 생각하시는데, 신나는 곡도 할 수 있습니다.
0저희 브랜드 공연들도 있어요. 대표적으로 ‘읽는 콘서트’나 ‘몽땅쑈’가 있고요. 계속 새로운 공연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아마 저희의 아이덴티티를 가장 잘 보여드릴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싶어요. 정말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예정이기 때문에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매월 9일에 9와 숫자들 9주년 기념 다양한 컨셉의 공연이 기다리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9와 숫자들을 만나다 1부 보러가기
슬로우다이브(Slowdive)는 1989년에 결성된 영국의 슈게이징 밴드다. 흔히 슈게이징 3대명반 중 하나로 꼽히는 2집 <souvlaki,1993> 앨범이 유명하다. 다른 슈게이징 밴드들보다 대중적이고 깔끔한 음악이 특징으로 슈게이징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앨범이다. [본문으로]</souvlaki,1993>
요 라 탱고(Yo La Tengo)는 1984년 뉴저지 주 호보컨에서 결성된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이다. 1992년부터 현재 구성원인 아이라 카플란(기타, 보컬)과 조지아 허블리(드럼, 보컬), 제임스 맥뉴(베이스, 보컬)로 활동 중이다. [본문으로]
라디오헤드(Radiohead)는 1985년 영국 옥스퍼드셔 주 애빙던에서 결성된 얼터너티브 록 밴드이다. 밴드는 톰 요크 (리드 보컬, 기타, 피아노)와 콜린 그린우드(베이스), 조니 그린우드(리드 기타, 키보드, 그 외 악기), 필 셀웨이 (드럼, 퍼커션), 에드 오브라이언 (리듬 기타, 코러스, 백업 보컬)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으로]
제프 버클리(Jeff Buckley, 1966년 11월 17일 ~ 1997년 5월 29일)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본명은 제프리 스콧 버클리(Jeffrey Scott Buckley)이며 미국의 포크가수 팀 버클리의 아들이다. 그의 음악은 더 스미스, 레드 제플린과 니나 시몬, 밴 모리슨과 같은 여러 장르의 가수들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라디오헤드, 뮤즈, 콜드플레이등과 같은 밴드들이 자신들의 보컬이나 연주에 있어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본문으로]